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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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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조그마한 야생화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야생화는 한낮의 햇빛을 받기 위해, 바위와 돌의 시련을 이기며 올라 왔다. 밝은 황금빛 오라에 둘러 싸인 이 야생화는 작은 개체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당당하게 피어난 이 야생화는 가장 밝은 태양과 동등하다.
우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될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화를 내고, 자신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 씌울 대상을 찾거나, 아니면 이를 성장을 위한 도전으로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으로 어둠을 뚫고 나와 빛을 만난 야생화는 우리들에게 그 길을 보여 준다.
삶의 도전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도전을 피하거나, 거부할 필요는 없다. 도전이 거기에 있고, 씨앗이 꽃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 도전을 통과해 가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맞서라. 그러면 당신 안에 있는 씨앗이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Osho Dang Dang Doko Dang, 4장
도움말:
씨앗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씨앗은 꽃에 대해서는 모른다. 씨앗은 자신이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씨앗이 떠나야할 여행은 멀고도 멀다. 미지(未知)의 길에서는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 어느 것도 보장될 수 없다. 여행에서는 위험한 일들과 함정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씨앗은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다. 그렇지만 씨앗은 변화를 시도한다. 씨앗은 자신의 보호막이었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싸움은 시작된다. 싹은 흙과 돌과 바위를 뚫고 나아가야 한다. 씨앗은 매우 단단했다. 그러나 싹은 아주 아주 연약하다. 그리고 이제 수많은 위험을 만나야 한다.
씨앗은 수천 년 동안 살아 남을 수 있다. 단단한 껍질의 씨앗에게는 위험이 없지만, 싹이 가야 하는 길 앞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싹은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 지도 모른 채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태양을 향하여, 빛의 근원을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한다. 짊어지고 가야 하는 하는 십자가는 크지만, 꿈이 씨앗을 사로잡고, 씨앗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간의 길 역시 마찬가지이다. 길은 험난하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65. Consciousness (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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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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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서 마음의 영향은 대체로 우스꽝스럽거나, 억압적이기 때문에, '마음의 카드' 패에 나오는 대부분의 카드는 만화 같거나, 아니면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의식' 카드에서는 거대한 불상이 나온다. 그는 너무나 확장되어있기 때문에, 별들마저 넘어서 있고, 그의 머리 위에는 순수한 공(空)이 존재한다. 그는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마음을 하인으로 부릴 수 있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의식을 대변한다.
이 카드를 뽑았다면, 그것은 지금 당신의 의식이 초연하고, 존재 핵의 깊은 고요함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수정과 같은 명료함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당신에게는 마음의 눈으로 진리를 이해하려는 욕망이 없다. 당신의 이해는 존재적이고 전체적이며, 삶의 맥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귀중한 선물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함께 나누어라.
Osho Bodhidharma, The Greatest Zen Master, 5장
도움말: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왔다가, 미지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이전에 수없이 여기에 왔었으며, 앞으로도 수없이 여기에 올 것이다. 우리의 실제 존재는 영원하지만, 우리의 몸, 우리에게 부여된 형태(embodiment)는 유한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틀, 우리의 집, 육체, 마음, 그것은 모두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틀은 낡고, 늙고, 죽는다. 하지만 그대의 의식은 몸과 마음을 초월해 있으며,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 이 의식을 보리 달마는 무심(無心)이라고 불렀고, 붓다 역시 이를 무심이라고 불렀다. 무심은 영원하다. 무심은 잠시 형상을 지녔다가 다시 미지의 세계로 돌아간다.
미지(未知,unknown)에서 기지(旣知,known)로, 다시 기지에서 미지로의 움직임은 사람이 깨달을 때까지 영원히 계속된다. 한 사람이 깨달으면, 그때 그의 생은 마지막 생이 된다. 그 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을 깨달은 이 꽃은 다시 삶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삶은 '배우기 위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는 배울 것을 모두 배웠다. 그는 미망(迷妄,delusion)을 초월했다. 이제 그는 처음으로 기지의 세계로부터 미지의 세계가 아닌 불가지(不可知,knownable)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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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reativity (창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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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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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는 물과 불의 연금술(alchemy)이, 위에서는 신성(神性)의 빛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이 카드의 인물은 창조의 힘에 문자 그대로 '사로잡혀' 있다.
창조성에 대한 경험은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테크닉, 기술, 지식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만물을 탄생시키는 에너지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이 에너지는 어떠한 형상도, 틀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모든 형상과 틀은 이 에너지로부터 나온다.
당신의 창조성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노래가 될 수도 있으며, 정원에서 꽃을 가꾸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요리를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통해 표현되고자 하는 것에 열려 있는 것이다. 자신의 창작물을 소유하려 들지 말라. 창작물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진정한 창조성은 신성과의 합일을 통해, 그리고 신비와 미지의 세계와의 합일을 통해 일어난다. 그때 그것은 창조하는 이에게는 기쁨이, 타인들에게는 축복이 된다.
Osho A Sudden Clash of Thunder, 4장
도움말:
창조성이란 그대가 하고 있는 일상의 행동들에서 나타나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이며, 사물에 대한 내적인 접근방식이다. 모든 사람이 화가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이 화가라면 세상은 추해질 것이다. 살기 힘들 것이다. 모든 사람이 무용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창조적이 될 수는 있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기쁨으로, 사랑으로 행한다면, 그대의 행동이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때 그것은 창조이다. 그 행위를 통해 내면의 무엇인가가 자라난다면, 그것은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창조적인 것이다. 그것은 신성한 것이다.
그대가 창조적이 될수록 그대는 좀 더 신성(神性)에 다가가게 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신이 창조자라고 말한다. 나는 신이 창조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그대가 더 창조적일수록 그대는 더 신성해진다. 창조성이 절정에 달하여, 삶 전체가 창조 행위가 될 때, 그대는 신 안에서 살게 된다. 창조적이었던 사람이 신에게 가장 가까웠던 것을 보면, 신은 창조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대가 하는 일을 사랑하라. 그대가 그 일을 하는 동안 명상적으로 하라. 그것이 무엇이든지!
38. Healing (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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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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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과거의 상처들이 표면으로 떠올라 온다. 지금은 깊이 숨겨져 있던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할 때이다.
이 카드의 인물은 벌거벗은 채, 존재의 사랑스런 손길에 완전히 열려 있다. 몸 주위의 오라는 빛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과 보살핌, 그리고 편안함으로 인해 삶의 투쟁과 고통이 녹아 없어지고 있다.
빛의 연꽃이 그의 육체와 그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섬세한 에너지체에 나타나고 있다. 각각의 에너지 층에 치유를 상징하는 무늬와 수정들이 보인다.
'물의 왕'의 치유의 손 아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자신으로부터, 혹은 타인으로부터 숨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다면, 치유는 일어난다. 그리고 다른 사람 또한 건강하고, 조화로운 전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Osho The Empty Boat, 10장
도움말:
아니다. 그대는 상처를 지니고 다닌다. 그대에게 에고가 남아 있다면, 그대의 전존재는 상처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 상처를 계속 가지고 다닌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는 것에 관심이 없다. 발벗고 나서서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려 할 뿐이다. 남을 상처 입힐 만큼 힘이 남아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상처를 받는다. 왜냐하면 그대는 상처입을 준비를, 그것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도인(道人)을 건드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자극을 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도 없다. 그의 상처는 치유되었으며, 그는 건강하고, 조화로운 전체이다. '전체(whole)'라는 말은 아름답다. '신성한(holy)'이라는 말도 '전체'라는 말에서 나왔다. 도인은 치유된 존재이고, 전체이며, 신성하다.
그대의 상처를 자각하라. 상처를 키우지 말고 치유하라. 상처의 뿌리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머리가 사라질수록, 상처는 더 많이 치유될 수 있다. 머리가 없다면 상처도 있을 수 없다. 머리 없이 살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전체적인 존재로 살라. 24시간 동안만이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든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보라. 누가 모욕을 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반발하지 말고, 그대 안에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라. 그러면 어느 순간 갑자기, 그대는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에너지가 내면에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56.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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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IZOPHR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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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단단한 두 벼랑 사이에서 어떻게도 못하고 있었던 옛 생각들에 대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마음의 우유부단하고, 이중적인 면 때문에 어떻게도 못하고 있을 때, 똑같은 상황 속에 있게 된다.
양손을 놓아 버리고, 머리부터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발을 놓아 버리고, 다리부터 먼저 떨어질 것인가? 여기로 가야 하나? 저기로 가야 하나? "예"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나?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결정을 했든, 항상 "다른 쪽을 선택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한다.
이러한 딜레마(dilemma)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안된 말이지만, 양쪽 모두를 동시에 놓아 버리는 것이다.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아니면 마음으로 해결해 보려고 해서는 그 딜레마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당신의 가슴을 찾을 수 있다면 가슴을 따르라. 가슴이 어디 있는지를 찾을 수 없다면, 펄쩍 펄쩍 뛰어 보라. 그러면 당신의 가슴은 빨리 뛸 것이고, 당신의 가슴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Osho Dang Dang Doko Dang, 3장
도움말:
인간은 분열되어 있다. 정신 분열증은, 적어도 지금 시대에는, 인간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원시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의 조건화와 문명, 문화와 종교는 인간을 분리되고, 분열된 모순 투성이의 군중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깊은 어딘가에는 아직도 통일된 전체가 살아 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조건화는 기껏해야 인간의 껍질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심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때문에 인간은 계속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
선의 모든 노력은 어떻게 이러한 정신분열증을 떨쳐 버릴 것인가, 어떻게 이중적인 인격을 떨쳐 버릴 것인가, 나누어진 마음을 어떻게 던져 버릴 수 있는가, 어떻게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고, 중심잡히고, 결정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존재하는 방식으로는 그대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대는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시장과 같다. 수많은 목소리들. "예"라고 말하고 싶은데도, 즉시 "아니오"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대는 "예"라는 말 한마디조차도 전체적으로 할 수 없다. 이런 방식이라면 행복은 가능하지 않다. 불행은 분리된 인격의 당연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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